0.비디오 게임 이전의 게임들
비디오 게임 이전에도 인류는 수많은 놀이를 하고 유희하였다.
그 중에서도 규칙을 가지고 목표 달성을 위해 하는 놀이를 게임이라 부른다.
최근 그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일단은 이렇게 나뉜다.
스포츠
몸을 가지고 하는 게임을 스포츠라고 부른다.
대표적으로 축구,야구,농구 같은 종류가 있으며
넓은 의미로 따지면 술래잡기나 숨바꼭질도 스포츠의 일종이라고 봐도 좋겠다.
테이블탑 게임
스포츠와는 달리 매우 정적인 게임이다.
바둑,체스,장기,모노폴리,부르마블과 같은 도구를 사용하는 보드게임에서 부터
포커,화투와 같은 카드게임
심지어 술게임 까지
정적인 게임들을 총칭하는 분류이다.
현재 비디오 게임의 규칙들은 대부분 테이블탑 게임(그중에서도 보드게임)에서 따온 경우가 많다.
아날로그 게임기
역사도 그리 길지 않고 도구를 쓴다는 점에서 보드게임의 특징이 묻어난다.
19세기 찰스 페이가 처음 만든 슬롯 머신.
15세기 프랑스에서 바가텔(Bagatelle)이라 불리는 나무판 안에서 공을 굴려 핀을 맞추는 게임에서
20세기에 미국에서 새롭게 개량된 핀볼.
1920년대에 나온 테이블 축구.
1930년대에 나온 오리 사냥
그리고 스포츠인지 게임기라고 해야할지 애매한 선상에 있지만
지금도 오락실에서 보이는 에어 하키 게임기나 농구 게임기 같이 직접 몸을 쓰는 게임기도 있다.
1.비디오 게임의 태동
1947년, 미국에서 토마스 골드스미스와 에슬 레이 맨이라는 사람들이 개발한 음극관 놀이 장치라는 기계가 나온다.
CRT 모니터를 통해 송출되는 화면에서 여러개의 손잡이로 속도와 탄도궤적을 조절하여 목표에 미사일을 맞추고 스코어는 수동으로 계산하는 방식의 게임이었다.
당연히 상업적 목적은 아니었기에 금방 잊혀졌지만 최초의 게임으로서 기록되어 있다.
그 이후로 1952년 틱택토를 컴퓨터로 할 수 있는 3목두기
1958년 미국의 원자력 연구소인 브룩헤븐 국립 연구소에 방문하는 손님들을 위해 한 연구원이 개발한 테니스 포 투 와 같은 게임들이 나왔지만
역시나 대중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금세 잊혀졌다.
1961년 MIT에서 당시 학교에 막 보급된 컴퓨터를 이용하여 학생이었던 스티븐 러셀이 우주 전쟁이라는 게임을 만들었는데
앞서 나온 게임들과는 달리 지속적인 피드백으로 인해 계속해서 발전하고 학교 내에서도 굉장한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역시나 이 게임의 개발자도 상업적 이용에는 관심이 없어서 게임은 MIT 내부에서만 머물러 있었다.
2.상업적 이용의 시작
물론 거기서도 돈냄새를 맡은 사람은 있었다.
1968년 군수 산업체에 다니던 랄프 베어가 2인용 탁구 게임기인 브라운 박스를 개발한다.
마그나복스 사는 그의 발명을 보고선 돈이 되겠다 싶었는지 그를 데려가
1972년 최초의 가정용 게임기인 마그나복스 오디세이를 출시한다.
모니터에 셀로판지를 붙여서 게임을 하는 굉장히 조악한 방식인데다가
1972년에 나온 최초의 전자 아케이드 게임기인 아타리의 퐁에 밀려 판매량은 별로였다.
뭐 그래도 표절로 소송 걸어서 로열티 받아 먹었으니 마그나복스 입장에서는 쌤쌤이인 셈이다.
비디오 게임 시장은 퐁의 대중적 성공에 힘입어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뒤이어 아타리는 1977년 아타리 2600을 출시하는데 최초로 제대로 된 컬러를 지원하는 게임기였다.
아타리 2600은 엄청나게 팔려 나갔고 게임 시장을 대표하는 하나의 게임기로 자리잡게 된다.
-PC 시장
애초에 가정용 게임기보다는 컴퓨터로 시작된것이 비디오 게임이라는 장르이기 때문에
PC에서도 역시나 게임의 발전은 되고 있었다.
가정용 게임기와 아케이드 시장과는 다른 곳에서 발전이 되고 있었는데
TRPG를 비디오 게임으로도 즐기기 위한 시도들이 있었다.
콜로설 케이브 어드벤처 (1976)와 같은 최초의 어드벤처 게임.
그리고 상업적 부분으로 까지 발전한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 조크(1980)
던전 탐험 부분만 떼어내어 게임으로 만들고 게임 장르의 이름 그 자체가 되어 버린 로그(1981)
그리고 서양 RPG계의 전설이 된 울티마(1981)와 위저드리(1981)가 출시 된다.
3.꿈틀거리는 잠룡
당연히 엄청나게 경제 성장을 하고 있던 일본에서도 게임으로 난리였다.
1977년 당시 완구 회사였던 닌텐도에서도 게임 사업을 시작하여 별로 좋지는 않은 가정용 게임기를 출시하고
1980년 휴대용 게임기 게임&워치로 초대박을 쳐 닌텐도가 본격적으로 게임 사업에 발을 딛게 되고
타이토는 1978년 최초의 슈팅게임인 스페이스 인베이더 라는 아케이드 게임을 개발하게 되는데
이게 대박이 나서 일본 전국에 있는 빠칭코집이 문을 닫을 정도였다고 한다.
남코에서는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게임들을 우수수 쏟아낸다.
대표적인 게임들이
팩맨(1980)
랠리X(1980) -방구차-
갤러가(1981) -갤러그-
제비우스(1982)
이 외에도 유명한 게임들이 많지만 여기서 이만 줄이겠다.
4.아타리 쇼크
아타리 쇼크.
게임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만한 단어일 것이다.
왜 아타리 쇼크라 부르는가?
시장에는 아타리 2600의 게임들이 엄청나게 많이 풀렸다.
아타리 2600 플랫폼으로 게임을 만드는 것은 아타리 뿐이었지만
게임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기업들은 아타리 2600을 분석해 아타리의 허락도 맡지 않고 게임들을 출시하기 시작한다.
물론 아타리는 그들을 고소 했지만 먹히지 않고 로열티 먹는걸로 대신하게 되었다.
그래도 게임이 팔린다는 것 자체가 아타리와 아타리의 게임을 만드는 회사들에게는 돈이 되는 일이었기에
시장에는 수많은 아타리 게임들이 출시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나온 잘만든 게임이 엑티비전의 피트폴이지만 이런 게임은 매우 드물었고
대부분은 시작하자마자 돈 주고 산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주는 무시무시한 똥겜들이었다.
매우 꼴리는 야겜 커스터의 복수
갓봉무녀
당연히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저런 똥겜들을 거르고는 싶었지만
일단 게임이라고 하니 무작정 사다 보니깐 게임사들 역시 계속해서 똥겜을 내놓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당연히 이 악순환이 결국에는 끊어지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것을 보고 아타리 쇼크라고 부른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명작 영화 E.T를 소재로 한 게임 E.T
이 게임은 아타리에서 직접 만든 게임인데 5주만에 날림 작업을 해서 500만장이나 찍어 내서 팔았지만
그중 100만장도 안팔린데다가 엄청난 버그와 똥과 같은 게임성으로 대부분 반품에 이르렀다.
아타리뿐만 아니라 다른 게임사에서 만든 게임들도 역시나 핵똥겜이었기에
유통업체들은 안팔리는 게임들을 엄청나게 싸게 팔아버렸는데 대부분의 게임들이 그렇게 팔려버렸고
싼 가격에 맛 들린 소비자들은 제가격에 게임을 안사주게 되면서 북미 게임사들이 줄줄히 도산.
1983년에 시작되어 1985년에 끝난 아타리 쇼크는 북미에 있던 게임사들을 대부분 증발시켜 버렸다.
물론 그 사이에 구소련에서 테트리스(1984)라는 퍼즐게임계 불세출의 띵작이 튀어나왔지만
소련 밖으로 나가는데 시간이 좀 걸려 80년대 후반에야 게임계를 휩쓸었기에
북미 가정용 게임 시장의 붕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아타리의 빈자리를 차지한 것이 바로
일본의 닌텐도와 세가 이다.
5.닌텐도와 세가의 서양 침략
북미 게임게의 1인자인 아타리가 물러난 게임 시장에 등장한 것이 바로 일본의 게임사인 닌텐도와 세가이다.
닌텐도는 휴대용 게임기인 게임&워치로 자금을 확보하여
1983년 패밀리 컴퓨터(줄여서 패미컴).
북미에서는 NES란 이름으로 1985년에 발매 하였다.
닌텐도는 아타리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서드파티 제도를 만들어
패미컴으로 나오는 다른 회사의 게임들의 품질을 관리하였고
잇따라 엄청난 게임들이 출시 된다.
액션 플랫폼 게임계의 고전 명작이자 현재 진행형
슈퍼마리오 브라더스(1985)
젤다 공주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전사 링크의 모험을 다룬
젤다의 전설(1986)
마리오가 처음으로 출현한
동키콩(1981) -아케이드 용으로 먼저 개발 후 이식-
본격 길찾기 액션
메트로이드(1986)
의외로 카피 기능은 없지만 잘만 플레이 할 수 있었던
별의 커비(1992)
닌텐도는 자사 게임들 외에도 수많은 서드파티 게임들을 확보한다.
스페이스 인베이더와 갤러그의 뒤를 이을 비행 슈팅
그라디우스(1985) -코나미 제작-
횡스크롤 액션 게임의 틀을 정립시킨
악마성 드라큘라(1986) -코나미 제작-
지금은 고인이 된 시리즈
록맨(1987) -캡콤 제작-
엿같이 어려운 난이도의 액션 플래포머
마계촌(1985) -캡콤 제작-
일본식 RPG의 틀을 정립한
드래곤 퀘스트(1986) -에닉스 제작-
드래곤 퀘스트를 모방 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는
파이널 판타지(19887) -스퀘어 제작-
하나같이 게임 역사에서 빼먹을 수 없는 주옥같은 게임들이다.
그런 압도적인 질과 물량에 패미컴은 승승장구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질세라 역시나 일본의 게임사인 세가도 여러번의 실패끝에 1988년 16비트 게임기인 메가 드라이브 (북미명 세가 제네시스)를 출시하여
닌텐도가 먹고 있던 북미 시장의 절반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는데 성공한다.
세가의 마스코트 캐릭터인 소닉이 나오는 플래포머 게임
소닉 더 헤지혹(1991)
소닉 이전의 세가의 마스코트격 캐릭터였지만 지금은 뒷간 늙은이
알렉스 키드(1986)
닌자 액션 게임
시노비(1987) 아케이드판 출시 이후 이식
엔딩이 황당한 수간물
수왕기(1988)
세가의 대표 RPG
판타시 스타2 (1989)
다른 벨트스크롤 액션 게임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베어 너클(1991)
일본 SRPG 띵작
랑그릿사(1991) -메사이어 제작-
패미컴만큼은 아닐지라도 꽤나 명작 게임들이 많이 나온 플랫폼이기도 하다.
물론 1990년대 닌텐도의 슈퍼패미콤이 나오면서 왕좌를 빼앗기게 되지만 말이다.
-PC 시장
닌텐도와 세가 그리고 나머지 놈들이 피터지게 싸우는 동안
PC 게임은 가정용 게임기에 비하면 매니아층이라 아타리 쇼크 x까고
PC 게임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발전을 해나갔다.
게임 패드가 아닌 키보드와 마우스라는 특유의 조작체계 때문에 PC만의 게임들이 만들어졌다.
물론 가정용 게임기로 이식이 안된건 아니지만 PC에 비하면 조작이 불편하다.
그래서인지 세세한 조작이 필요한 전략 시뮬레이션 장르와
노부나가의 야망(1983)
삼국지(1985)
초기에는 키보드로 입력해야만 했던 어드벤처 장르가 PC에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 미스테리 하우스(1980)
키보드가 아닌 마우스를 활용한 공포의 저택(1987)
경영 시뮬레이션 장르 최초의 작품인 심시티(1989)도 출시 되었다.
물론 RPG 게임들도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었다.
우주먹튀 리처드 개리엇
울티마 시리즈 (울티마 5)
본작보다 외전작이 더 흥해버린
마이트 앤 매직 (1986)
일본 PC게임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리고 깨지지 않는 기록(40만장)의
드래곤 슬레이어즈 제나두(1985)
그리고 일본의 전설적인 게임사 엘프에서 만든 드래곤 나이트(1989)도 이때 나왔다.
-한국의 상황
1980년 중앙일보에 실린 사진.
신문에 나올 정도로 국내 아케이드 게임 시장은 커졌지만
게임을 수입하기만 했고 직접 만드는 것은 없었다.
한국은 80년대 후반기에 와서야 제대로 된 상업용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신검의 전설(1987) 이라는 최초의 상업용 게임에서 부터
우주전사 둘리(1988) 같이 캐릭터를 활용한 게임들이 출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