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황에 조 단위의 뭉칫돈이 몰려드는 곳이 있다. 마땅히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돈을 잠깐 묻어두는 금융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다.
펀드평가사 KG제로인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7일까지 MMF에는 16조4116억원 자금이 들어왔다(순유입). 다른 펀드를 압도하는 수치다.
국내 주식형 펀드에 7900억원, 해외 주식형 펀드에 1조3641억원이 유입됐다. MMF와 비교하면 15분의 1, 20분의 1 수준에 그친다.
해외 채권형 펀드에선 3조6519억원이 오히려 빠져나갔다(순유출).
MMF 순유입액 급증은 다른 펀드는 물론 과거와 비교해도 유례가 없다. 2016년과 지난해만 해도 MMF에서 131억원, 15조8362억원이 각각 순유출됐다.
올해 들어 7일까지 MMF 순유입액은 과거 연도별 수치와 비교했을 때 역대 최대다. 2014년 기록(13조4526억원)을 깼다.
MMF 몸값을 올려놓은 것은 불안한 시장 상황이다. 올초 반짝 급등했던 국내ㆍ외 증시는 하반기 들어 요동쳤다.
가열되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 속도를 내기 시작한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이 시장 불안감을 키우면서다.
MMF는 초단기로 돈을 굴려서 해서 수익을 내는 상품이다. 수익률은 낮지만 손실은 거의 나지 않는다. 펀드계의 ‘수시입출금식 예금’ 격이다.
MMF는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부동 자금이 잠시 머물다 가는 용도로 많이 활용된다. 주식과 채권, 부동산 등 자산 시장 전체가 흔들리는 금융시장 불안 속에 ‘연 1%대 수익도 어디냐’며 MMF에 돈을 묻어두는 투자자가 늘었다.
KG제로인 자료를 보면 올해 들어 지난 7일까지 국내 주식형 펀드 수익률은 마이너스 18.48%였다. 해외 주식형(-11.10%)과 국내 주식혼합(-10.66%), 해외 주식혼합형(-5.28%), 국내 채권혼합형(-3.44%), 해외 채권형(-3.26%) 등도 줄줄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면치 못했다. 반면 MMF는 1.49%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신현호 NH투자증권 상품기획부장은 “MMF 같은 대기성 자금이 늘어나는 것은 시장 불확실성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계 경기가 올해보다 내년 더 둔화할 것이라고 보는 이가 많다”며 “딱히 투자 자산 가치가 반등할 만한 동력(모멘텀)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기성 자금이 늘어나는 지금의 경향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주형 유안타증권 본부장은 “주식ㆍ채권ㆍ부동산 등 대부분 상품의 전망이 불확실하고 투자자들도 자신이 없어 하는 분위기"라며 "특정 자산에 투자하기보다는 대기성 자금으로 MMF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장의 불확실성과 MMF 자금 흐름은 같이 간다”며 “자산 시장이 안정되고 가격도 호조를 보여야 MMF의 대기성 자금이 다른 투자처로 옮겨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