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혁신상의 경제학
엔씽·알고케어 투자유치 탄력
올해 韓 수상 기업 116개 달해
룬랩, 도트힐 등은 문 닫아
"혁신상이 성공 담보하진 않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IT·가전 전시회 'CES'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는 국내 스타트업이 눈에 띄게 늘었다. 사진은 CES 2024에 마련된 'K-스타트업 통합관'. 한국벤처투자 제공
애그테크 스타트업 엔씽은 10년 전 회사를 만들며 스마트 화분을 출시했다. 초창기 사업 모델은 조악했다. 날씨와 온도 등의 재배 조건을 모바일로 확인하는 게 전부였다. 이 업체의 운명이 바뀐 것은 2020년이다. 인공지능(AI) 기술로 수분과 온도 등을 제어하며 작물을 재배하는 ‘플랜티 큐브’가 CES 최고혁신상을 받으면서 벤처캐피털(VC) 업계의 신데렐라로 발돋움했다. 이 업체는 최근 아랍에미리트(UAE) 기업과 1만㎡ 수직농장을 구축하는 395억원 규모의 업무협약(MOU)을 맺는 등 해외로 영토를 넓히고 있다.
혁신상 수상 후 투자 급증
14일 VC업계에 따르면 2019년 7건에 불과했던 국내 스타트업의 혁신상 수상 사례는 지난해 111건, 올해 116건까지 늘었다. 스타트업들은 혁신상을 수상하며 VC의 관심을 받게 되고 투자 유치를 받는 것도 쉬워진다고 입을 모은다. 혁신상이 ‘성장 사다리’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엔씽은 CES 최고혁신상을 받은 2020년에만 120억원을 투자받았다. 수상 전 20억원대에 머물던 투자금 규모가 한꺼번에 500% 급증했다.
혁신상은 기술력을 증명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매출과 이용자 수 등 성과 지표가 없어 기술력 증명이 어렵다. CES 2018 혁신상을 받은 링크플로우는 미국 50개 주에 360도 카메라 1만 대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혁신상을 받고 세계 최대 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에서 4억원을 모금하며 기술 개발을 본격화할 자금을 마련했다. 올해 4년 연속 수상한 헬스케어 업체 알고케어 관계자는 “상을 받은 뒤 투자사들의 문의가 쏟아져 첫 프리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업화 역량은 담보 못해
CES 혁신상의 심사 기준은 엔지니어링·디자인·혁신 등 세 가지다. 제품 기능과 의도한 사용 방식 등을 판단해 엔지니어링 점수를 책정한다. 디자인은 제품 미학과 사용한 재료 등을 기준으로 삼는다. 특허가 있거나 삶을 바꾸는 기술 등이 있으면 혁신 점수를 높게 준다.
VC업계에서는 CES 혁신상 수상이 스타트업의 성공을 담보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사업화나 마케팅, 영업과 관련한 역량은 혁신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스마트 생리컵으로 CES 2019 혁신상을 받은 스타트업 룬랩은 곧 폐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황룡 대표는 잠적한 상태로 투자사들의 연락도 수년째 받지 않고 있다. 투자사들은 자금 회수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 기업은 창업 당시만 해도 SK텔레콤이 투자를 유치하면서 주목받았지만 끝내 사업에 실패했다.
2022년 혁신상을 받은 헬스케어 로봇 스타트업 도트힐은 지난달 폐업했다. 상을 받은 지 2년 만이다. 6억원이 넘는 적자에 허덕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트힐은 자세 교정을 돕는 AI 로봇 모니터로 상을 받았다. 체형과 수면 상태에 따라 자동 조절되는 스마트 베개로 혁신상을 받은 메텔은 4억원 가까이 되는 적자를 견디지 못해 지난해 6월 사업을 정리했다. VC업계 관계자는 “혁신 기술과 참신한 사업 모델은 성공으로 가는 첫 관문”이라며 “그 후에도 고객을 만들고 매출을 올리는 지루한 자격 검증을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