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사려면 주식 뿐" 대출 받아 풀매수, 시장 휩쓰는 '주린이'
개미시대② 2030 주식 광풍
연봉 7000만원의 금융권 직장인 박모(29)씨는 주식투자를 하기 위해 1억4000만원을 신용대출 받았다. 최근 코스닥 상장 바이오주에 투자했다가 3000만원 손실을 봤지만, 주식을 그만둘 생각은 “단 한 번도 안 해봤다.” “저희 세대가 서울에서 괜찮은 집을 사려면 다른 길은 없습니다. 적금에 돈 붓는 사람들이 안타깝습니다.” 박 씨의 말이다.
개미 투자자. 셔터스톡
2030세대 주식투자 열풍이 올 한 해 주식시장을 휩쓸고 있다. 올해 미래에셋대우‧NH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KB증권‧키움증권 등 6개 증권사에서 신규로 개설된 계좌 가운데 57%가 2030 세대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코스피가 급락했던 지난 3월 시장에 동참한 '주린이'부터 장기투자자까지, 이들은 사상 최대로 치솟은 투자자 예탁금의 주축이 돼 '동학개미운동'을 이끌고 있다.
6대 증권사 신규 개설 계좌 현황.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소문에 사고, 뉴스에도 산다
2030세대의 투자는 거침없다. 이른바 ‘테마주’ 투자에도 거금을 붓는다. 대기업 3년차 직장인 조모(28)씨는 지난 1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간 경영권 다툼 조짐이 보이자 곧바로 한진칼 주식을 매입했다. 당시 4만원대였던 주가는 지난 3월 지분다툼이 본격화하면서 9만원까지 치솟았다. “몇 번씩 사고팔고 해서 하루에 5~10%씩 여러 번 먹고 나왔다”는 조씨는 “뉴스는 세밀하게 보지 않는다. 이슈가 실제 회사의 수익과 관련이 없는 건 알고 있다”고 말했다. 2030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이른바 ‘오치기 투자(5만원 내지는 5% 수익률만 거두면 바로 매도하는 투자)’이다. 이는 지난달 국내 증시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사상 최초로 30조원을 넘기는 데 일조했다.
국내 시장별 평균 주식 보유 기간.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반면 IT나 자율주행차 등 미래산업에 투자해 장기적 수익을 노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최근 국내 증시를 선도 중인 BBIG(바이오‧배터리‧IT‧게임) 등 우량주가 이들의 주 투자종목이다. 제조업 회사에 재직 중인 김모(30)씨는 “뜬소문이나 '뇌피셜'로 운만 노리기보다 재무제표를 보고 최소 일주일 이상 기업 분석을 한다”며 “3년 이상 장기투자해 40% 이상 수익률을 낸 종목도 있다”고 말했다. 주식정보 애플리케이션 증권플러스가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2030 고객 17만6556명의 관심종목을 분석한 결과, 카카오‧네이버‧LG화학 등 BBIG업종과 현대차·삼성전자 같은 우량주가 10위권에 대거 포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7월 기준 개인 투자자 순매수 상위 10개 종목.
PB 저리 가라, ‘집단지성’이 종목 찍는다
은행 PB(프라이빗뱅커)가 골라주는 종목에 투자하던 기성세대와 달리, 2030세대는 ‘집단지성’을 활용한다. 조씨는 현재 모교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생긴 투자자 단체대화방 3개에 참여하고 있다. “이슈가 터지면 기사나 ‘지라시’가 실시간으로 공유된다”는 게 조씨의 설명이다. 각 대화방 당 참여인원은 많게는 1000여 명에 달한다. 조씨는 “익명이어서 연령대나 직업군은 모른다”고 말했다.
‘전문가’가 돈을 받고 종목을 짚어주는 이른바 ‘리딩방’도 인기다. 리딩방에 참여해 본 경험이 있는 김씨는 “장전, 장중, 장후로 나뉘어서 (방장이)시황분석과 뉴스를 올린다. 중간중간 종목을 짚어주는데 우량주보다는 작전이 쉬운 일명 ‘동전주’가 많다”고 전했다. 그는 “매도시점을 잘못 잡으면 크게 손실을 본다. 2~3번 성공했고 한 번 크게 손실을 봤다”고 덧붙였다.
유튜브 채널에도 젊은 투자자를 겨냥한 투자 관련 콘텐트가 늘어나는 추세다. 공기업에 재직 중인 정모(28)씨는 “유명 유튜브 채널에서 ‘BBIG’가 성장가능성이 큰 종목이라고 하더라. 조회수가 높은 영상이어서 신뢰가 갔다”고 말했다. 정씨는 현재 500만원 상당의 카카오 주식을 보유 중이다.
제로금리에 대출 막혀서…결국 집 사려고
2030세대의 가장 큰 투자목적은 ‘내 집 마련’이다. 집값은 올랐지만 대출은 어려워지면서 주식투자가 현금마련의 필수 경로가 됐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지난 5월 전국 만 25~39세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주택 구입을 위한 재원 마련’을 1~3순위 투자 목표로 꼽은 응답자가 61%에 달했다. “대출이 너무 안 돼서 서울에 조그마한, 안 좋은 집이라도 사려면 현금 몇억은 있어야 한다. 현금 마련 수단은 주식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제로금리가 길어지면서 예‧적금만으로는 자산을 불릴 수 없는 점도 한몫했다. 건설회사 과장인 9년 차 직장인 A씨(35)는 “제로금리 때문에 현금은 휴지조각이 될 것 같았고,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집을 사려면 뭐라도 해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3월부터 투자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최근 3000만원 신용대출을 받아 투자금을 두배로 늘렸다.
일각에선 2030의 주식 광풍이 당분간 지속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명진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물질적 욕구가 해소될 기회가 점점 더 닫히다 보니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데, 비트코인·부동산·로또 열풍 등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며 “(이런 흐름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